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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정각에 도착. 공기가 다르게 느껴진다. 온정각을 빙 둘러싼 산들의 경치가 예사롭지 않다. 온정각 주변 모습은 잘 다듬어진 휴게소처럼 느껴진다. 온정각 동관은 남측에서 운영하는 음식점과 커피숍이, 서관에는 북측에서 운영하는 음식점과 면세점이 들어서 있다. 일하는 직원들 중 북녘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과 멀리 보이는 ‘주체’라는 글자를 통해 이곳이 북녘이라 실감할 수 있었다.

금강산의 사계절은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을 만큼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겨울의 금강산은 벌거벗은 채로 속살을 남김없이 보여준다고 개골산(皆骨山) 또는 눈이 많이 쌓이면 설봉(雪峰)산이라 불린다. 봄은 금강(金剛), 여름은 봉래(蓬萊), 가을은 풍악(楓嶽)산이다. 이번에는 눈 쌓인 모습을 간직한 설봉산을 보러 가는 셈이다. 금강산을 다시 찾는다면 단풍이 물든 가을에 찾고 싶다.

금강산에서만 운영하는 관광버스를 타고, 구룡연 코스로 출발했다. 버스가 움직이는 동안에는 절대 촬영이 불가능하다. 구룡연에 가기 전에 금강산의 4대 사찰 중에 하나인 ‘신계사’를 볼 수 있었다. 본래 11개의 전각을 거느린 큰 절이었지만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타 없어지고, 삼층석탑과 터만 남아 있었다. 2004년부터 북측과 현대아산, 조계종에서 함께 복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계사란 이름은 본래 새로울 신(新)자를 썼는데, 나중에 신(神)으로 바뀌었다. 신계천에 연어 떼가 많이 올라왔는데 사람들이 하도 연어를 잡아먹자 신계사 주지가 동해 용왕에서 연어를 올려 보내지 말라고 편지를 썼다고. 그 뒤로 연어 떼가 올라오지 않자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하여 그때부터 신(神)자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구룡연은 소나무 군락지로 유명한 곳이다. 북측 음식점인 목란관에서 시작되는 이곳은 조선 3대 명 폭포중의 하나인 구룡폭포가 유명한데, 폭포 벽의 높이가 약 100m, 폭포의 높이는 74m, 너비가 4m로 동양에서 손꼽히는 크고 아름다운 절경으로 알려져 있다.

몸을 가다듬고 산행을 시작했다. 구룡연코스는 산책하는 정도라지만 평소 운동 부족으로 얼굴이 달아오르고, 숨이 차다. 금강산 소나무는 궁궐에서 임금의 관을 짰다고 해 황장목이라고도 하고, 줄기가 붉어 적송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또한 곧게 뻗은 소나무가 미인의 자태를 닮아 미인송이라고도 한다. 눈이 온 뒤라 소나무를 에워싼 산에 덮인 흰 눈은 몸도 마음도 시원하게 해준다.

통일 사진대회인 만큼 모두 카메라 안에 풍경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좀 더 편히 걸으며 쉬엄쉬엄 천천히 둘러보고 싶었지만 언제 이곳에 또 올 수 있을까 싶어 열심히 셔터를 눌러댄다. 눈으로 보는 풍경은 장관인데, 내 사진 속의 풍경은 반쯤 모자라 보인다.

날이 추워 물이 꽁꽁 얼어 있어 진정한 계곡의 풍경을 볼 수는 없었지만 겨울의 모습도 매우 아름답다. 남측과 가장 다른 모습은 중간중간 빨간 서체로 새겨져 있는 비석과 돌이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북측 재료로 만든 물건들을 판매하는 판매원들과 비경에 얽힌 이야기에 대해 설명해주는 안내원들이다. 그들과의 만남 자체가 너무나 반갑고, 인사도 하고, 대화도 나누고 싶었지만 이는 마음에서일 뿐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다행히 함께 동행한 선배가 안내원들과 이야기를 대신해 그걸로 만족할 뿐이다.

다리 하나를 지나 금강산의 아름다운 바위들로 둘러싸여 하늘만 보이는 곳인 ‘앙지대’에 다다랐다. 멀리 지원(志遠 – 뜻을 멀리 가져라)이라는 붉게 칠한 큰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삼국지의 제갈공명이 자신의 서재에 걸어놓은 글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그 글은 ‘담박명지(澹泊明志) 영정치원(寧靜致遠)’으로 ‘맑은 마음으로 뜻을 밝히고, 편안하고 고요한 자세로 원대함을 이룬다’는 뜻이다.

산을 오르다 보니 추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몸 속으로 땀이 나고 있었다. 그늘을 만든 커다란 바위에 ‘삼록수(蔘鹿水)라고 적힌 서체가 보인다. 삼록수는 산삼과 녹용이 녹아 흐르는 물이라는 뜻이다. 이곳도 카메라에 담으며 어느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사진을 찍다 보니 시간은 금새 지나갔다. 점심시간 전까지 내려가야 하는데, 구룡폭포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없다. 옥류동에 도착하니 흰 눈이 덮인 산 사이로 삐죽 내민 햇살과 꽁꽁 얼은 계곡이 조화를 이룬 풍경이 장관을 이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옥류동에는 선녀들이 내려와 춤을 추었다는 무대바위가 보이고 바로 옥류폭포와 옥류담이 보인다. ‘북한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교수는 옥류동에 관한 시 하나를 적어 그 아름다움을 대신했다.


높이 솟은 세존봉은 동남으로 안아왔고
부르기 좋은 옥녀봉은 서북으로 반겨섰는데
앞에 솟은 천화대야, 뒤에 있는 소옥녀야
뾰족해도 곱지나 말거나 험준하거든 깊이 가지나 말았으면
한가운데 희맑게 내려앉은
숫돌 같은 한 점의 바위는 옥소반 같고
그 위로 흐르는 물은 구슬을 굴리는 듯
그 앞에 담긴 물은 넓거든 깊지나 말거나
깊거든 맑지나 말았으면
어쩌면 이다지도 보는 사람의 가슴을 풀어 헤쳐주는가?


답답한 서울에서만 지내다가 말로만 전해 듣던 금강산에 발을 놓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레 미소를 짓게 한다. 사실 남인지 북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찌 보면 우리는 이미 하나이기 때문에 굳이 선을 가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모른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검지 손가락을 펼치며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많은 사람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통일은 더 이상 이상도, 먼 이야기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비봉폭포, 구룡폭포, 관폭정, 상팔담까지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렸다. 눈부신 태양아래 뽀족하게 뻗은 능선들. 그 위로 고개를 들어내는 태양. 다음을 기약하며 눈으로 인사를 나눈다.

[산행코스] 목란관-수림대-양지대-삼록수-금강문-옥류동-연주담-구룡폭포-상팔담(약4.3Km) (소요시간 3시간)

올라가는 길은 멀고, 힘들었지만 내려오는 발걸음은 훨씬 가볍다. 게다가 꼬르륵 소리를 내며 밥 때를 알리는 배꼽시계 덕분에 한달음에 내려올 수 있었다. ‘목란관’에서 북의 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평양냉면과 비빕밥 중에 선택이었고, 두가지를 다 먹어보고 싶어 하나씩 주문했다. 감자전, 만두, 이면수 튀김이 기본 음식으로 차례로 제공된다. 고사리 나물, 무채, 도라지등을 감자전에 싸서 함께 먹으니 그 맛이 일품이다. 돌솥 위에 반숙 계란이 넓게 펴져 있는 비빔밥, 계란을 살짝 들췄더니 그 안에 각종 야채들이 들어 있다. 살살 비며 먹으니 너무 맛나다. 여기에 시원한 평양냉면과 국물을 들이킨다. 평양냉면은 맛이 담백해 양념 맛에 익숙한 사람들은 잘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 꿩이 들어간 만두도 제법 맛있다. 새콤달콤하다던 대봉 막걸리 한잔을 들이키고 싶었지만 사정상 불가능. 마음 같아서는 북의 주류며 안주며 모두 맛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북의 음식들은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리기 때문에 담백한 맛이 난다. 음식은 북측 접대부들이 가져다 주는데, 질문을 하면 설명도 잘해주고, 노래 한자락 부탁하면 노래도 불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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